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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시모란-성도의 교제”
2009-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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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바나’라는 교회 통계학자가 사람들이 교회를 결정하는 이유와 교회를 떠나는 이유를 조사했습니다.  많은 이유중 그 첫번째가 바로 ‘교제’였습니다.  사람들이 겉으로는 영적인 것을 이유로 말하지만 실상 내면적 이유는 ‘사람’에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구성원들에게서 사랑을 느껴서’가 교회를 결정하는 결정적 이유가 된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교회를 떠나는 결정적 이유도 ‘사람에게 실망하여서’입니다. 그만큼 교회 안에서 ‘사람’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옥시모란’이 있습니다. 서로 모순된 단어들이 결합되어 형성된 어휘를 옥시모란이라 합니다.  예를 들면 점보슈림프와 같은 말입니다.  점보는 엄청나게 크다는 말이며, 슈림프(새우)는 작은 생명체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두개의 모순되며 상이한 단어가 결합하여 점보슈림프라는 어휘가 생겼습니다 .

성경에도 이런 옥시모란이 있습니다. ‘성도의 교제’라는 말입니다.  성도라는 단어의 뜻이 무엇입니까?  거룩한 자, 또는 거룩한 무리라는 개념입니다.  너무도 고상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성도가 본질적으로 의인으로 변하였기에 붙여진 호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미래적 개념입니다.  천국에서 영화된 우리의 모습을 미리 앞당겨서 붙여진 것입니다.  성도의 개념은 선언적 개념입니다.  칭의적 개념입니다.  본질이 바뀌었기에 성도가 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거룩하다라고 선언받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정확한 표현은 ‘용서함받은 죄인’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용서받지 못한 죄인’이요, 교회안의 그리스도인들은 ‘용서함 받은 죄인’입니다. 예수 믿는 자들의 죄성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런 자들이 모여서 형성된 곳이 교회입니다.  그러기에 성도의 교제라고 했을 때 완벽성이 있는 교제를 떠올리면 안됩니다.

그루초 막스라는 교회학자는 “만일 교회가 완벽해서 우리를 만족시켜줄 수 있다면 그 완벽함 때문에 우리가 그 교회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 교회의 구성원이 되는 순간 그 교회의 완벽성은 깨지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신앙생활하는 사람이 불완전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본회퍼는 “교회에 대한 환멸이 생기면 좋은 현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는 완벽해야 한다는 환상을 빨리 버리면 버릴수록 우리는 더 빨리 겉모습을 버리고 우리 모두가 불완전하며 은혜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성도의 교제는 “완벽한 자들의 교제가 아니라 스스로 죄인이고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만의 모임”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교제를 언급할 때 사랑을 말합니다.  사랑을 하는 일은 쉽지 않기에 부담입니다.  교회에 출석한지 얼마 안되는 분이 실망해서 힘들어하는 것을 보는 것도 참부담입니다.  그러나 아십니까?  이것은 긍정적인 것이라는 것을.  왜냐하면 성도의 교제는 우리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는 또 다른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안에서 성도들의 교제가 기쁘고 즐거운 것이 성도들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 결코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들의 교제가 기쁘고 즐거운 결정적 이유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며 모이는데 있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가지모임이 두달여의 방학을 끝내고 개학합니다.  저는 가지모임에 대한 두근거리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대감은 우리 모두가 교제를 완벽하게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 확신에서 기인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생기는 기대감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쩌면 가지에 소속된 순원이 자신의 코드와 스타일에 합당한 자가 아니라고 여겨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너무도 다르다는 것 때문에 순원 피차간에 부담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혹, 앞으로 가지모임을 통해서 좋은 교제를 나눌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도 제시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 모두에게 도전드리고 싶습니다.  가지모임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시라고…  가지모임이 황홀하고 기쁨이 될 수 있는 결정적 이유가 우리 자신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있기 때문입니다.  새롭게 시작되는 가지모임이 여러분의 인생을 바꾸는 새로운 모멘트가 될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복드립니다.


사랑과 감사로
목회실에서 김지성목사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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