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예배를 고민하며…

iGMC 2005.06.18 14:09 조회 수 : 4458 추천:23

    설교를 할 때마다 느끼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한참 열변을 토하다보면 저 혼자 열을 내고 있는 순간을 발견할 때입니다. 아무도 저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 입니다. 분명히 한국말입니다. 그러나 한국인이 알아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가끔씩 교우들은 정보사회에 사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사용할 때 그 의미를 잘 알아듣지 못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쓰는 말을 어머니, 아버지 세대가 알아듣지를 못합니다. 그 뿐이겠습니까?   지금은 각자 자기 자신의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표준이 있고, 자신의 기준이 있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을까? 이것이 고민입니다.

    불교 같으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저마다 깨달음이 있어 그 깨달음과 수행을 인정해 주는 진리 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식에 관하여는 이슬람교도 쉬울 것 같습니다.  그들은 성직자가 읽어주는 그들의 경전인 코란을 듣는 것을 가장 중요시 여기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가르침의 해석이나 강해에 중점을 두지 않습니다. 그 음성에 감성을 모을 뿐입니다.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느낌을 중요시 하고 있습니다. 카톨릭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수천 년의 종교 전문성이 창출해 낸 종교 예술이 신비한 감정을 만들어내는 것 같습니다.   성당 건축미와 교회당 건축미는 뭔지 모르게 차이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언가 표현할 수 없는 건축미의 차이가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교우분이 딸과 함께 친척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성당을 다녀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대학교를 다니는 딸이 아버지 얼굴을 쳐다보며 “아버지 나 성당 다니면 안 돼?”   아빠는 깜짝 놀라서 “왜 뭐가 좋아서?”라고 물었고 딸은 거침없이 말을 내뱉었답니다. “분위기가 좋아서…” 아빠는 기가 막혔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급합니다. 한시가 급합니다. 이 감성시대의  문화권에 맞는 예배 문화의 창달이 시급합니다.”

    고전적 예배 문화에 익숙한 분들은 교회의 한 구석에 설치된 드럼 세트를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세상과 교회의 차이가 무엇인가?’라고 반문하기도 합니다. 성경과 찬송도 없이 교회에 나와 비디오 프로젝트에 비친 말씀과 찬송가를 보고 예배하는 사람들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것입니다.  말도 안 되는 예배 용어를 타이틀로 하여 드라마, 신나는 복음성가를 부르는 예배를 보고 거부감이 생긴다고 말합니다.  거룩한 강단에 청바지에 티셔츠, 그리고 통기타에 랩과 비슷한 율조의 성가를 부르는 목사를 보고, 납득이 안 된다고 예배당을 뛰쳐나오는 예배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찌합니까?   복음은 하나지만 문화가 다른 것을….   현대적 예배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고전적 스타일 예배에 대하여 무조건 시대에 뒤떨어진 예배로 단정해 버립니다.  찬송가를 고집하는 분들을 향하여 답답한 형식주의자라는 비판을 가합니다.  조용하고 피아노와 올갠이 은은하게 울려퍼지는 예배를 향하여 시대에 한참 뒤떨어지는 처진 예배, 답답한 예배로 몰아부칩니다.   예배에 대한 생각과 개념이 점점 양극화 현상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를 계획하며 기안하는 목회자들은 머리가 아플 뿐입니다.  그렇다고 예배에 대해서 문화 싸움만 해서 될 일이겠습니까?  가능하다면 문화는 수용하고, 복음은 공고히 해야만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렇게 우스운 상상을 다해 보았습니다. 1호 예배당은 전통적 예배실, 2호 예배당은 현대적 예배실, 3호 예배당은 전통과 현대적 감각이 섞인 예배실등등… 이렇게 마치 10개의 영화를 동시 상영하는 극장처럼 동시 예배실이 열려 있으면 이것은 비성서적일까?  똑같은 목사가 똑같은 원고로 똑같은 교회에서 몇 차례  설교하는 것도 있는데…. 그렇다면 전혀 다른 목사님들이 각각 다른 문화형태로 예배드리는 교회를 세우면 교리상 문제가 있을까?  별의별 생각을 다하면서 예배를 고민해 보는 것입니다.  예배는 너무도 중요한데 문화적 갈등으로 말미암아 예배가 방해받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은 저로 하여금 별의별 우스운 생각까지 다하도록 만듭니다.

  목회실에서
  아름다운 예배를 기원하는 김지성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