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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씻김"에 대하여

Chrisean 2005.08.26 23:08 조회 수 : 2805 추천:29

<본문: 요 13:3-10 >

OO 자매가 Discuss 하길 원했던 본문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Q: 본문에서 얻을수 있는 섬김에 대한 교훈은 무엇일까요?

먼저 본문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해 보았습니다.
12개의 질문에 대한 나름대로의 대답을 적어보며 그 퍼즐조각들을 맞추어보았습니다.
의도했던것과는 다른 주제에 이르렀지만 더 큰 숲을 볼수 있었고 일관적으로 흐르는 예수님의 의도를 알수 있었습니다.  본문은 3절~10절 까지지만  1절부턴 20절까지 본문 전후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어떤 관주나 주석도 참고하거나 인용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어긋난것이 있다면 저의 개인적인 주관으로 인정해 주십시오.


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가로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8.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9.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 발 뿐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
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11.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12.        저희 발을 씻기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
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18.        내가 너희를 다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19.        지금부터 일이 이루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이름은 일이 이룰 때에 내가 그인줄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로라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묵상 질문>

     1) 본문은 무엇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까?    ‘단어’로 답변하시오.  여러가지 생각나는대로 써도 됩니다.

사실 이 질문은 맨 마지막에 해야 하는데…   결국 한마디로 말하라면 예수님의 ‘사랑’일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의 사랑은 많은 특성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 사랑안에 포함된 섬김, 겸손, 인내, 죄에 대한 반응, 모범, 희생… 그러나  가장 핵심적인 특성은 ‘원수에 대한 사랑’입니다.  (이유는 2)번과 10)번, 12)번에서 찾을수 있습니다.   본문외 구절을 참조하십시오.)

     2) 왜 예수님은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을까?
(원래대로라면 식사전에 씻는것이 전통이고, 식사후에 씻기실수도 있었다)

시간의 긴박성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의 긴장을 풀고 오붓한 시간을 가지고 있지만 예수님은 반나절후의 죽음을 예지하시고 3년동안 아무것도 해준것이 없는 제자들에게 죽기전에 해줄수 있는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셨습니다.  제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지신 예수님은 가진건 몸밖에 없다… 라고 생각하시고 휴식을 취할 여유도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셨습니다.
또다른 이유는 가룟 유다때문이었습니다.  공관복음들을 비교 관찰해보면 예수님이 발을 씻기시기까지 유다는 아직 만찬자리에 있었습니다.
(저녁 먹은 후에 …  그러나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위에 있도다  > 눅 20~21절, 요 21절~30절)
만찬후 제자들은 세부류로 나누어졌습니다.  예수님을 배신하기로 작정하고 바로 그 길로 떠난자, 예수님을 따른다고는 하지만 긴박한 순간에 예수님이 예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감지하지 못하고 편안하게 남은자,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 예수님곁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자…
첫번째 부류, 가장 먼저 ‘잃어버릴’ 양 때문에 예수님은 식사도중에 ‘벌떡’ 일어나셨습니다.

    3) 왜 다른 제자들은 발 씻기실때 가만히 있었을까?

간음한 여인들을 정죄할때 무리들앞에서 잠잠히 그림을 그리던 장면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때 무리들은 가만히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라는 느낌을 가지다가  느낌이 자기에게로 옮겨지면서 ‘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거지?’라며 아마도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을 돌아보게 되었을 것입니다.  제자들도 처음에는 예수님의 행동에 어리둥절하다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어떤 생각에 잠겨있었겠지요.  그 생각은 무엇일까요?
누가복음 22장 24절에 보면 누가 크냐하는 문제로 제자들사이에 다툼이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나는 간음한 여인을 정죄할 권리가 있다’라고 생각했던 군중들처럼 ‘나는 너희들보다  더 수고를 많이했다, 더 큰 권세를 누릴 권리가 있다’ 라고 성을 내던 제자들에게 무릎꿇고 발을 씻기실때 그들은 할말이 없었을 것입니다.

     4) 왜 베드로만 예수님께 질문을 했을까?

베드로가 가장 먼저 ‘그래, 나는 섬김을 받을 자격이 없다’라고 느끼지 않았을까요?
베드로의 빨리변하는 성격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혼자 칼을 뽑아들었던 베드로의 용감성이 여기서도 보입니다.   다른 제자들을 대변하는 희생정신, 공동체 정신이 베어있었을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지도자로 세우심을 받을만한 리더쉽이 베드로에게는 있었습니다.

     5) 왜 베드로는 “내 발을 씻기지 마시옵소서”라고 하지 않고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라고 했을까?

두가지로 볼수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을 구주로 인정했지만 권세를 가지신분으로 인식했지, 희생하시고 섬기시는 분으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뜻보다 예수님의 뜻을 먼저 알고자하는 순종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유도 모르고 이해가 안되지만  예수님이 왜 발을 씻기셔야 하는지 먼저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6) 왜 예수님은 베드로의 질문에 “이후에는 알리라”라고 말하며 명확한 답변을 피하셨을까?  그리고 ‘알리라’라고 하셨을때 무엇을 안다는 뜻인가?

먼저 ‘이후에는’이 어떤 때를 말하는 것인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말씀하신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반드시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을 것입니다.  인자가 온것은 대속물로 주려함뿐만이 아니라 ‘섬기려’왔다는것을 (막 10:15) 예수님이 죽기전까지 베드로를 비롯해 제자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도 부활한 예수님이 ‘떡을 떼심으로’ 깨닫게 하기까지 예수님 죽음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눅 24:13-45)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던 베드로지만 성령님이 깨닫게 하기까지 그리고 예수님이 죽기전까지 그 본질과 실체를 이해할수가 없었습니다.

7)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베드로가 ‘나를 절대로 씻기지 못하리이다’라고 한것은 겸손같으나 어떻게 보면 예수님의 섬김을 거부하는 의지라고 볼수 도 있다. ‘왜 나를 씻기려 하십니까?  내 일은 내가 알아서 책임집니다.  내 일에 간섭하지 마시오”라는 표현이 아닐까?
당시 전통상 손발을 씻는것은 죄를 씻는것과 동일한 개념이다.  어쩌면 ‘내 죄를 건드리지 마시오’ 아니면  아니면 ‘내 의지를 건드리지 마시오’라는 의식이 표현된것이 아니었을까?
예수님이 볼때 베드로가  “나는 당신과 상관이 없소”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한 말은영어로는 “You have no part with me”라고 표현되어 있다.  일차적으로 ‘나는 너의 스승이 아니다, 네가 고백했던 구주도 아니다, 너 스스로가 부인하고 있다’는 뜻이겠지만… (13절) 아니면 “그래? 그럼 그대로 있어라.   너 잘난체로 있어라.  내가 주는 사랑을 받고 싶지 않다면 괴롭히지 않겠다” 뭐, 이런 뜻이었을까?  
이 ‘part’는 무엇일까?
‘내가 너를 연약한 존재로 인정한다  그래서 너를 씻기기를 원한다. 너도 네가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라’
이것이 공통으로 소유할수 있는 part가 아닐까?

     8) 베드로는 왜 머리와 손도 씻겨달라고 하였는가?

베드로의 이런 요구는 유치한 것인가?  교만인가?
아니면 예수님의 인정을 더 받고싶은 과욕인가?...
제자들 앞에서 인정받고 싶었다면 죄인이요, 예수님 앞에서 인정받고 싶었다면 의인이다.
어느쪽인가?   저는 후자쪽으로 표를 던지고 싶습니다.
베드로는 이제 예수님의 주권을 인정합니다.  ‘예수님 나를 인정하시려면 확실히, 넘치게 인정해 주십시오.  하고싶은대로 내게 하십시오. 넘치게 하십시오.”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9)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베드로는 식사전에 목욕을 했는가?  예수님은 그것을 알고 계셨는가?  만약 이렇게 시작한다면 이 질문은 참으로 유치한 질문이 될수밖에 없다.  예수님은 어떤 영적 교훈을 말씀하시고자 한것이 분명하다.  그 이유가 10절에 나온다.  바리새파인들은 제자들을 손과 발을 씻지않는 무례한들이라고 욕한적이 있다.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 마 15:2)
그런데도 예수님은 제자들을 다 목욕한 자요, 깨끗한 자라고 인정하셨다.
죄인과 죄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시다.  11절, 18절, 20절 에 가면 예수님이 무엇을 말씀하고 계신지 더욱 분명해진다.  자기를 팔자가 누군지 아셨고, 내 떡을 먹는자가 배신하리라는것,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을 영접하는 자라는 것을 말씀하셨다.
이미 제자들은 예수님을 영접해서 목욕한 상태지만 한 사람,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영접하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다를 가리켜 다 깨끗하지 않다고 하셨다.(10절)
손과발은 이 세상을 살면서 계속 더러워지는 부분이다.  우리의 ‘생각’은 계속 죄에 오염되어 있다.  우리의 연약한 이부분을 예수님께 씻어달라고 제자들처럼 내어놓아야 한다.  그런데 유다는 예수님이 발씻기시는것을 거부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 2절) 아니, 처음부터 목욕한자가 아니었다.   분명히 유다는 예수님에 의해 발을 씻겼고 성만찬도 떼어 먹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떡을 먹고 유다의 마음이 굳어졌다.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 27절)

     10) 예수님께서 ‘끝까지 사랑하시느니라’(1절)가 어떻게 이 본문에서 적용되었습니까?

자, 이제 점점 결론을 향해 달려갑니다.
본문의 주인공은 베드로와 예수님이 아니라 사실은 유다와 예수님입니다.
발씻김 기사 전과 후에 유다에 대한 기사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왜 중간에 엑스트라처럼 끼였을까요?
유다는 예수를 영접하지 않은자요, 베드로는 ‘생각’의 세족식을 통해 예수님을 영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나’의 관점에서 보면 베드로가 주인공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의 관점에서 보면 유다가 주인공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인 도망할것을 아시고 발을 씻기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부인할것을 아시고 발을 씻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다가 배반할것을 아시고 발을 씻기셨습니다.
마지막 순간에도 예수님은 유다와 떡을 떼며 발을 씻어주며 그에게 영접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유다는 예수님의 사랑을 ‘끝까지’ 거부했습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사랑했습니다.
생전에 그의 말 그대로 원수를 사랑하는 본을 보이셨습니다.

     11) 예수님께서 주신 교훈은 무엇인가?
* ‘죄’라는 측면 – 예수님은 본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서로 발을 씻기실것을 부탁하셨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  > 14절, 15절)  서로 발을 씻어준다는 것은 서로의 허물과 죄를 받아주고 용서하자는 의미일 것입니다.  허물을 무조건 ‘덮어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죄를 인정하자는 의미입니다.  수건으로 더러움을 덮어서 눈가림을 하는것이 아니라 물로 씻고 닦는 것입니다.

* ‘섬김’의 측면 – 예수님이 발씻기시는 장면을 상상해 봅시다.   예수님은 겉옷을 벗고, 수건을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직접 담고 씻기셨습니다.  왜 구태여 이런 기록이 남게 되었을까요?   이 시점에서 예수님은 위대한 선지자요, 스승이요, 구세주입니다.  예수님은 씻으신후 이렇게 말씀하실수도 있었습니다.  “얘들아, 물좀 떠와라 너희들 발좀 닦겠다”   아니면 “얘들아, 나머지는 너희들이 처리해라. 발도 너희들이 닦고 물도 버려라” 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온전히’ 섬길 준비를 하셨습니다.  섬김이 필요하다고 느꼈을때 바로 행동하셨고(식사중) 섬길 환경을 준비하셨고(겉옷) 끝까지 섬기셨고 (발닦을 수건) 섬길 재료를 손수 준비하셨습니다 (대야와 물).  섬겨야 할 Policy라고나 할까요?   사랑의 한 속성, 섬김에 대한 좋은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요구대로 베드로를 목욕시키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를 Spoil 시키지 않기위한 절제된 섬김… (이 부분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적용이 필요합니다)

* ‘섬김을 받는’ 측면에서 – 섬김을 받는 사람은 베드로처럼 나의 부족한 점을 형제자매나 예수님에게 내어놓아야 합니다.  베드로처럼 지나친 겸손과 지나친 욕심으로 방어벽을 쌓거나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어떤때는 형제자매가 제가 식사할때나 간식먹을때 Serve하면 ‘고맙습니다’라고 하며 행복에 겨운 모습으로 맞이합니다.  음… 쉽게 말해서 도와주지 않습니다.  그 형제의 섬김의 기쁨이나 경건의 훈련을 뺏고싶지 않기때문입니다.  (‘어떤때’, Sometimes 입니다)

     12) 본 질문이외에 본인의 느낌이나 묵상, 질문들을 적어보시오.

쓰다보니 한편의 설교가 되고 말았습니다.   존대말, 반말 섞어가며…
오류가 있거나 다른 생각이 있으시면 지체말고 올려주십시오.
마지막 유다가 못채운 이 열두번째 질문을 이 글을 읽는 형제 자매와 같이 채우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