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어설픈 바보가 되지 맙시다”
어떤 목사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분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딱 책 한권 읽고 마치 자신이 세상의 지식을 다 아는 것처럼 여기는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지혜서라고 하는 탈무드에 이런 비유가 있습니다. ‘바다 속에 완전히 가라앉은 배는 항해하는 다른 배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절반즘 물에 잠긴
배는 다른 배의 항해에 장애가 된다.” 이말은 어설픈 지식을 함부로 쓰면 자신은 물론 남들까지 다치게 한다는 것을 경계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어설픈 지식을 가지고 마치 자신이 모든 것을 다 터득한 양 착각해서는 안됨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는 어설픈 영성을 가지고 있었던 제자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 요한,
야고보를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을 때, 예수님을 대신한 제자들이 서기관들과 많은
무리들이 둘러보는 앞에서 귀신들린 아이 하나를 놓고 실랑이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어떤 아버지가 귀신들린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와서 제자들에게
고쳐주기를 청했지만, 제자들은 그 아이를 고치지 못하여 진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모습은 간교한 서기관들에게 당연히 빌미를 제공했을 것입니다. 서기관들은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많은 군중들앞에서 예수님에
대한 강한 의혹을 제기하였던 것이 분명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그들의 부족한 모습을 질책하십니다. 예수님의 질책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어설픈 바보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어설펐습니다. 어설픈 실력으로 예수님의 신성과 능력에 대하여 공격 당하도록
만드는 빌미를 제공했던 것입니다. 제자들의
어설픈 모습은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었다는 것과 기도만이 귀신을 내어 좇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는 귀신을 이기며 굴복시킬 수
있는 진정한 힘이 바로 ‘영성’임을 표현하시려 했던 것입니다. 신앙의 참된 능력은 영성입니다. 이것이 실력입니다. 어설픈 신앙인은 자신이 영성부재인 것도 잘 모릅니다. 오히려 자신이 마치 대단한 존재인 것처럼 착각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랬습니다. 그래도 본 것은 있어서 예수님이 귀신들을 내어쫓던 모습과
방식을 흉내내어 그들은 귀신을 향해서 명령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귀신이 끄떡도 하지 않습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영성’이 실력이 됨을 다시금 발견하게 됩니다. 세상은 실력자에게 관심을 갖습니다. 예수 믿으면서 ‘실력’이나 ‘힘’이라는 단어는 마치 세속적이며, 버려야 할 어떤 사치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실력이라는 것을 과소평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실력을 갖출 것을 요구합니다. 물론 실력에 대한 정의와 내용은 세속적인
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세상은 ‘머니 파워’,
‘학식 파워’, ‘권력 파워’가 실력을 형성하는
것으로 몰아갑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것보다도 ‘영성
파워’를 진정한 실력으로 여깁니다.
목회실에서 김지성 목사가 드립니다.
예수님은 진정한 실력자이였습니다. ‘머니 파워’, ‘학식 파워’, ‘권력 파워’로 승부를 건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깊이 있는 관계속에서 형성된 ‘영성 파워’로 실력을 과시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강력한 도전 앞에서 제자들은 훗날 비로소 ‘영성’에 몰입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말씀과 기도에 자신을 헌신하며 성령의
능력을 간절히 사모했었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의 제자들은 실력자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실력으로 세상을 복음으로 점령해 나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결국 우리가 그분의 제자임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실력을 갖추는 것입니다. 우리의 실력은 ‘영성’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성이 바닥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합시다. 영성 위에 영성을 쌓아올리는 일에 깊은 관심을 가집시다. 세상이 우리를 얕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귀신이 우리를 앝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영성연마’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