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짧은 인생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쥐고 / 늙는 길 가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하니 / 이 구절은 대학시절 성경묵상 훈련을 받은 이후 30년 동안 일년에 한번 이상 묵상해 보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에 대한 느낌이 매년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20대 초반 묵상시에 기록한 내용입니다.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다. 향후 50년을 위한 도전정신이 필요하다” 30대 어느 날의 기록입니다. “너무 시간을 낭비했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시간경영이 필요하다.” 40대 때의 기록입니다. “시간이 빨라지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이렇게 살다가 이룰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50대의 초입을 통과하면서 묵상한 내용입니다. “인생은 제한적이다. 긴급한 일과 중요한 일을 구분해야 한다” 똑같은 성경구절에 대한 묵상내용은 나이를 먹을수록 ‘꼭 해야 할 일’에 대한 구분으로 좁혀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태양인 이제마’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습니다. 조선의 유명한 의원이었던 이제마선생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였습니다. 마지막회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버지 이제마가 장차 의원이 되겠다는 아들에게 묻는 말입니다. “저 산 넘어 무엇이 보이느냐?” “산은 보이나 산 너머는 보이지 않습니다.” "산너머가 보이지 않는데 어찌 의원이 되겠느냐? 공부를
더해, 더 생각하고 익혀라." 무슨 대화인가요? 의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픔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의원이 되려고 한다면 저 산 넘어도 사람이 살고, 가난과 질고에 시달려 몸과 마음이 병들어 허덕이는 인생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신앙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보여야 합니다.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을 사명이라고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신앙생활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여겨도 됩니다. 자신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뒤로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조건을 따져서도 안되는 일입니다. 사명이 완수된 삶을 성공한 삶이라고 합니다. 살아있는 동안 꼭 완수해야 할 그 일, 그일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여러분은 그 중요한 일을 잘 감당하고 계시는지요?
목회실에서 김지성 목사가 드립니다.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아주 어릴 때 저의 할아버지로부터 배운 시조입니다. 다섯살 밖에
안된 제게 왜 할아버지께서는 이런 시조를 외우게 하셨는지 그저 불가사이하기만 합니다. 뜻도 모르고 외웠던 시조였습니다. 집에 손님들이 찾아오시면 저는 자랑스럽게
이 시조를 손님들 앞에서 읊어대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손님들은 “고놈 참 명석하다”라고 껄껄웃으시며 칭찬해 주시곤 했습니다. 돌이켜 보니 철도 들지 않은 어린아이가 어른들 앞에서 이런 시조를 읊어대었으니 우습기 그지 없습니다. 이 시조는 고려말의 학자였던 우탁이란 분이 지은 것입니다. 우탁은 이 시조를
통해 인생의 짧음, 또는 인생의 제한성을 표현한 것입니다. 인생은 그만큼 짧은 것입니다.
『한번뿐인 인생 속히 지나가리라 오직 그리스도를 위한 일만이 영원하리라』
대학을 다닐 때 가장 많이 외치던 구호 중 하나입니다. 하도
많이 듣고, 하도 많이 입으로 반복해서 머리에 깊이 각인된 말입니다. 돌이켜 보니 이 구호의 진정한 의미를 반쪽만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리스도를 위한 일의 영원성’에 매료가 되어
그렇게 좋아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한참 경과된 지금에 이르러서야 이
구호의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일의 영원성’은 ‘인생의 짧음’을 이해하지 못하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대학시절 20대 초반의
팔팔한 시기에 ‘인생의 짧음’이 어떻게 이해되었겠습니까? 인생이 시간의 제한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시기가 아닐까 합니다. 모든 것이 가할 것 같은 패기와 무한도전 정신으로 뭉쳐진 나이였기에 인생의 짦음은 나이든 사람들의 푸념에 불과한 것으로 받아들였을
뿐이었습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편 9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