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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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없는 신앙은 무기력할 뿐이다

 

어떤 사람이 약속 시간에 늦어 과속을 하며 차를 몰고 있었습니다.  한참 달리고 있는데 단속 카메라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깜짝 놀라 재빠르게 속도를 줄였는데, 자신의 차가 지나가자 단속 카메라가 찰칵하며 촬영음을 내더라는 것입니다.  분명 자신은 속도를 기준 이하로 낮추었는데 카메라에 왜 찍혔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호기심이 많은 이 사람은 다시 돌아가서 속도를 낮춘 다음, 카메라가 있는 곳을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단속 카메라에 자신의 차가 또 찍히는 것이었습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속도를 최대한 낮춘 다음 그 앞을 다시 지나갔습니다.  그런데도 또 찰칵하고 자신의 차가 찍히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결국 그는 분통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법원에 가서 철저하게 따지리라 마음먹었습니다.  며칠 후 이 사람에게 고지서 석장이 날아왔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안전벨트 미착용’.  썰렁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 우스개 소리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형벌을 앞두었을 때 예수님을 감시하는 자들이 보인 행동은 분노의 행위였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희롱, 구타, 언어폭력  정말 예수님이 죄인이었다면 그들의 행동은 정당화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무지였습니다.  모르면서 잘 아는 사람도 행하기 어려운 행동을 그들이 스스럼 없이 저질렀다는 것입니.  이런 무시 무시한 분위기 속에서 예수님은 영성으로 정면승부를 하셨습니다.  책잡으려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이래도 걸리고 저래도 걸리는 유도 질문을 예수님께 합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대답해도 다 책잡히게 되어 있었습니다.  두렵고, 당황스런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자신만이 가지고 있었던 실력으로 반응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의 실력이 바로 영성이었습니다. 

 

이 시대는 정말 험악한 시대입니다.  철저히 힘의 논리가 위력을 떨치는 시대입니다.  재력, 무력, 학력 등등  오늘날의 신분은 돈이 결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비행기 1등석, 비지니스석, 이코노미석에 앉는 승객은 돈의 유무가 좌석을 결정합니다.   하지만, 모든 힘 중의 최고의 힘은 영력입니다.  영력이란 <영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힘이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영성은 계발되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바닥을 친 한 성도를 만났습니다.  자기를 가만히 놔두랍니다.  시간이 되면 회복될 것이랍니다.  그러나 난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오늘 영성이 바닥을 드러냈는데어떻게 시간이 해결한단 말인가요?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것이다라고 막연히 생각지 맙시다.  오늘이 내일을 결정하고, 내일이 모레를 결정합니다.  오늘 경건의 시간을 지나치면, 내일이 어떨지 뻔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주일 한번 빠지면 그 다음 주일의 모습이 어떨지는 뻔한 것입니다.

 

언젠가 안타까운 꿈을 꾼 적이 있었습니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상황인데 제가 지휘관으로 한 소대 정도의 병력을 이끌고 있었습니다.  적의 공격이 하도 치열해서 수류탄을 투척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아군이 수류탄의 안전핀 조차도 뽑지도 않고 투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제가 안전핀을 뽑아서 던지라고 고함을 치다 잠을 깨었습니다.  그리고 한참 동안 그 꿈의 아쉬움 속에 깊이 빠져있었습니다.  이게 무슨 꿈인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문득 든 생각은 실력에 관한 것이 아닐까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적을 제압할 수 있는, 무서운 시대를 제압할 수 있는 무기가 있지만 그 무기를 다루는 능력이 부재한 것은 아닐지.  아마 성령님은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의 영성 부재의 모습을 나의 꿈을 통해 지적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답게 살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소유하신 영성을 소유해야 합니다.  영성없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무기력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영성에 깊은 관심을 가지십시다.  영성으로 정면 승부합시다.  영성을 삶의 최고의 덕으로 삼읍시다.

 

목회실에서 김지성 목사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