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정신을 점검하는 성탄절

Global 2016.12.18 20:00 조회 수 :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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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점검하는 성탄절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칭기스칸은 항상 승리했습니다. 전광석화같이 빨랐기 때문입니다. 질풍노도와 같이 말을 달려 순식간에적을 궤멸시켰습니다. 빠르게 속도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몸이 가벼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유럽기사단 갑옷과 전투무기의 무게는 70㎏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반면에 칭기스칸 쪽은 7㎏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유럽병사들은 철갑통으로 된 갑옷을 입었습니다.  또 긴 창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정면만을 향해 돌진해서 싸우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위풍은 당당하고 그럴싸했지만 둔하기 그지없었습니다. 하지만 칭기스칸군은 얇은 철사로 된 스프링을 넣은 가벼운 옷을 입고 전투에 임했습니다. 당연히 날쌜 수밖에 없었습니다. 말과 한 몸이 되어 자유자재로 움직여서 적을 격파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습고 보잘 것 없는 존재로 보였던 칭기스칸과 그의 군대가 아시아와 유럽을 제패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형식파괴'를 드는 역사학자들이 참 많습니다.  당시 각 나라들이 보유했던 군대들은 시각적으로 위압감을 보이게 하는 일에 치중했습니다.  철갑옷, 그위에 두르는 각종 휘황찬란한 망또, 화려한 치장그래서 위압적인 군대의 이미지를 내려는데 많이 주력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군장들은 막상 전투에서 거르적거리는 장애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칭기스칸은 그런 '형식'을 파괴해 버렸습니다.  중요한 것은 '정신(Spirit)'이라는 점을 강조했고, 전투에 임하는 그의 군사들에게 날렵한 기동성을 부여했습니다.  그래서 아시아와 유럽을 그의 제국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칭기스칸을 보면서 '형식'보다 '정신'에 집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느낍니다.  예수님께서도 사역을 하시며 '정신'을 잃어버리고 형식에 치중하는 태도를 엄중 꾸짖으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 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마태복음  9:13)"  유대인들은 제사 드리는 것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 제사의 정신은 상실한지 오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사라는 형식보다도 정신이 중요함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형식이 나쁘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그 형식 자체가 본질은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부흥의 삶을 이루기 위해서는 '정신'에 치중해야 합니다.  형식보다 정신을 세우는 일에 주력해야 합니다.  언제나 존재목적을 이해하며 그 존재목적 속으로 자신을 융합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름답게 세워지는 가정일수록 가정의 정신인 '가족애'를 함양하는 일에 더 많은 신경을 씁니다.  가족이 함께 모여서 가족예배를 드린다거나, 가족 기도회를 갖는등..믿음속에서 한가족의 사랑을 고취시키는 일과 같은 가족애의 정신을 세워가는 가정이 풍성해 집니다.  

성탄의 계절입니다.  성탄의 계절에 그리스도인들이 다루어야 할 중요한 사항은 십자가의 정신’ ‘복음의 정신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요란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겸손하고 고요하게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만왕의 왕으로 오신 메시야의 탄생 장소는 마굿간이었습니다.  메시야 강림을 고대하던 사람들의 예상과는 사뭇 다른 장소와 분위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배경이 됩니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요?  정신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닐까요?  메시야의 탄생 속에 담긴 사랑과 은혜를 드러내려함이 아닐까요? 


성탄의계절이 갈수록 요란해지고 있습니다.  화려한 조명기구와 감미로운 캐롤송이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왠지 마음을 들썩이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깊은 생각에서 절대 벗어나면 안됩니다.  분위기도 좋지만, 혹 깜박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정신을 되찾아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이 성탄의 계절에 까맣게 잊어버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되집어 보아야만 합니다.  우리가 굳게 붙들어야 할 정신은 사랑과 은혜입니다.  정신줄을 놓지 않는 자만이 부흥의 결실을 누리게 됨을 잊지 말면서 말입니다.


목회실에서 김지성 목사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