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막강 인생 마인드”
“이거 놔 임마!”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충격을 받은 호랑이는 얼떨결에 토끼를 놓아 주었습니다.
다음 날 충격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로 방황하던 호랑이 앞에 또 한 마리의 토끼가 나타났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간단하게 토끼를 잡았습니다. 그러자 토끼가 이랬습니다.
“나야 임마!”
그 토끼는 바로 어제 그 토끼였던 것입니다. 깜짝 놀란 호랑이는 그 토끼를 얼른 놓아 주었습니다. 호랑이는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면서 다시는 저 무서운 토끼를 알아보지 못하는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며 굴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다음 날 호랑이는 또 토끼를 잡았습니다. 이번엔 분명 그 토끼가 아닌 다른 토끼였습니다. 그런데 호랑이는 그 토끼가 한 말에 쇼크를 받아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이 토끼가 호랑이에게 뭐라고 말한 것일까요?
“소문 다 났어 임마!”
비록 우스개 소리지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혹 당신은 무기력한 호랑이처럼 마음과 정신이 무기력한 존재로 전락하지 않았는지요? 발톱과 이빨이 빠지고 작은 일에도 놀라고 무능력한 존재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요? 군인이 훈련을 받는 이유는 실전에서 승리를 거두는 목적에서 입니다. 강한 훈련을 받아 놓고서도 정작 전투에서 제대로 한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쓰러진다면 얼마나 허망합니까? 베드로와 예수님의 제자들이 바로 그랬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3년 반 동안 예수님을 통해서 훈련을 받고도, 정작 예수님의 고난 에서는 종이 호랑이로 전락하였고, 마귀에게 조롱 당하면서 무너져 내립니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들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은혜 받을 때는 난리법석을 피우지만 오래 가지 않습니다. 마음이 뜨거워지면 목숨 걸고 신앙생활 할 것 같은데, 얼마 가지 않습니다. 결국 우리는 결론을 짓습니다. 난 안돼…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시시한 존재로 부르신 것이 아님을 말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꿈을 품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구속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들을 향한 꿈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위대한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원하셨던 제자들의 모습은 막강인생입니다. 결코 나약인생이 아닙니다. “난 안돼”가 아닌 “난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해야 할 막강 인생이다”라는 마인드를 접어서는 안됩니다.
막강 인생은 마인드의 구조부터
다릅니다. 알피니스트였던 에드먼드 힐러리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 산을 등정하려고 했으나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용기를 내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에베레스트 산이여, 너는 자라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자랄 것이다. 나의 힘도 능력도 자랄 것이다. 또 내가
구비한 장비도 더 나아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돌아오겠다. 기다려라. 나는 다시 너의 정상에 오를 것이다."
이 말을 한 에드먼드 힐러리는 10년 후인 1953년 5월 29일, 에베레스트
산 등정에 재도전하여 마침내 그 산 정상에 우뚝 섭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마음속에서 막강 인생으로서의 정체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막강의 마인드를 키워야 합니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이사야 43:7)”
하나님의 부르심 속에는 ‘막강 인생’의 전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시시한 자가 아닙니다. 종이 호랑이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창출해야 할 사명자입니다. 그렇기에 막강 인생 마인드가 흐려지지 않도록 생각의 구조를 과감히 바꾸어 봅시다.
사랑과 감사로
목회실에서 김지성 목사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