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실패는 더 이상 실패가 아니다
미시건주 앤아버라는 도시에는 통상 사람들이
‘실패 박물관’라 부르는 전시관이 있습니다. 이 박물관에는 각 기업들로부터 생산된 진기한 제품 7만여점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박물관이 처음부터 실패 박물관으로 기획된 건 아니었습니다. 이 박물관의 정식 이름은 ‘뉴 프로덕트 웍스(New Products Works)’ 입니다. 우리말로 굳이 번역하자면 신상품 전시관이라고나 할까요? 이곳은 설립 취지는 ‘신제품 전시와 교육’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왜 이곳을 ‘실패
박물관’이라 부를까요? 이 박물관의 설립자는 그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나는 그저 신제품을 모아놓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매년 출시되는 신제품 가운데 80~90%는 실패합니다. 그래서 이 박물관이 실패 박물관이 된 것입니다.” 실제로 이곳은 각가지 기발한 아이디어로
출시된 제품들이 즐비합니다. ‘색깔없는 콜라’, ‘스프레이
방식 치약’ , ‘성인들을 위한 이유식’, ‘무공해 샴푸’등등..
언뜻 보기만 해도 흥미가 유발되며 관심이 가는 그런 제품들입니다. 그러나 출시된 당시 소비자들의 외면으로 인해 더 이상 생산되지 못했던
그런 제품들입니다.
이 박물관은 입장료는 상당히 바싸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박물관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미리 예약을 해야만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 박물관을 찾아올까요? 놀라웁게도
이 박물관에는 세계적인 굴지의 기업 중역들이 주 관람객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속한 기업의 대부분은 이름만 대어도 알 수 있는 잘 알려진 현재
최고의 히트상품을 생산하는 회사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 ‘실패 박물관’을 찾는
이유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 입니다.
참신했지만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해 사장되버린 제품들을 통해서 신상품으로 재탄생되는 예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박물관에
전시된 제품들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실패작’이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실패’란 말은 더 이상 효용가치가 없는 무가치성의 결과라 말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그 가치를 재발견해 보려해도 가치성 창출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질
때 ‘실패’로 판정됩니다. 그러나 ‘실패작’을 통해서 새로운 가치가 창출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실패가 아닙니다. 오히려 성공의 디딤돌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발명왕 에디슨이 세상을 밝히는 전구를
내놓기까지는 수천건의 실패작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에디슨은 이전 수천개의 실패작을 ‘실패’로 정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나는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수천가지의 틀린 방식을 발견했을 뿐입니다.”라고 말하며 이전의
실패가 있었기에 비로소 세기의 발명품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음을 밝혔습니다.
에디슨의 말을 되새겨 본다면 세상에 실패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지 실패는
성공의 모체가 될 뿐입니다. 성경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됨’을 선포합니다. 꿈을 안고 살아왔지만 그 꿈에 한참 뒤쳐진
자신을 인지할 때 ‘실패’를 운운하게 됩니다. 그러나 ‘실패운운’은 너무 섵부른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계획한 것에 빨리 도달하도록 허락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경험과 통찰’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실패처럼 보이는 결과 속에는 성공을 이루기 위한 숨겨진 발판 ‘경험과 통찰’이 있습니다. 이것은 스스로 통과할 때만 얻을 수 있는 인생에서 가장 값진 보배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실패’로 너무 일찍 간주해 버리고 폐기처분시킵니다. 돈주고도 얻을 수 없는 너무도 값진 ‘경험과 통찰’을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실패처럼 보이는 모든 결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실패는
더 이상 실패가 아니다.”
사랑과 감사로
김지성 목사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