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고집 버리기”
지난 주간 목과 어깨의 극심한 통증으로 고개를 돌리거나 숙이는 일이 한동안 불가능했었습니다. 목이 뻐근하고 굳어지는 듯 싶더니 이내
통증으로 견딜 수 없는 상황까지 다다랐습니다.
급히 침을 맞으며 근육을 이완시킨 결과 상태가 많이 호전되어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원인이 궁금했습니다. 곰곰 생각해 보니 설교원고를 작성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장시간 앉아있었던
것이 주원인이 된 듯 합니다. 준비된
설교문을 컴퓨터에 입력하기 위해 타이핑을 하다가 피곤했었는지 의자에 앉은채 잠이 들었습니다. 이때 머리를 의자뒤로 젖힌 자세에서 장시간 잠이 들었던 것이 화근이 된
것이 분명했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오랫동안 같은 자세로 컴퓨터를 사용하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보거나, 혹은 장시간 의자에 한자세로 앉아 있을 때
근육이 경직되어 극심한 통증에 이를 수 있다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눈길을 끈 단어는 ‘장시간
같은 자세’ 였습니다.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여행할 때 좁은 객석에서 한자세로 앉아있다보면 몸이 저려오고 마비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이런 증상을 ‘심정맥 색전증’이라고 하는데 좁은 좌석에서 오랫동안 움직임이 없이
앉아있다 보면 혈액순환에 이상이 생기면서 나타납니다.
이것도 ‘장시간 같은 자세’가 그
원인입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간격으로 몸을 움직여 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굳어진 자세’를 만들지 않는 것이 통증이나 ‘심정맥 색전증’을 방지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된다는 것입니다.
‘굳어진 자세’가 무엇일까요? 일종의 ‘고집’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자세를 조금만 바꾸면 되는데 그것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고집’을
긍정적으로 다룰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태도보다 ‘한우물파는 정신’을 강조하는 측면에서
말입니다. 그러나 ‘한결같은 마음’과 ‘편협한
생각에서 출발하는 고집’은 다른 것입니다. ‘한결같은 마음’은 긍정의
결과를 가져다 줍니다. 하지만
‘편협한 생각에서 출발하는 고집’은 부정의 결과를 얻도록
만듭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고집불통’의 사람이 아닙니다. 대나무처럼 곧고 소나무처럼 늘 푸르른 한결같은 믿음을 갖지만, 동시에 자신을 깨어버리는데 결코 인색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사람 바울은 사명과 믿음에 있어서 한결같은 ‘초지일관’의 자세를 보였습니다. 결코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부인하고 깨버리는 작업을 일상으로 감당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린도전서 15:31)”고 외쳤습니다. 그의 고백 ‘날마다 죽노라’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편협에서 출발하는 자신의 고집’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도 아니고,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일도 아닌 일에 목숨걸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본질은 결코 타협하지 않겠지만, 그외
사소한 것에는 목숨걸지 않겠다는 지혜를 표현한 말입니다.
언뜻볼 때 ‘고집’은
상당히 멋있는 듯한 덕목인 듯
하지만 ‘고집불통’이 가져다 주는 고통은 의외로 큽니다. 이에 상응하는 값은 반드시 치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집’은 버려져야 합니다. 장시간
같은 자세 때문에 얻게 되었던 통증은 컸지만, 이를 통해 발견한 깨딸음이 컸기에 하나님께 감사할 수
밖에 없는 한주간을 저는 보내고 있습니다.
사랑과 감사로
목회실에서 김지성 목사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