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사랑의 마음” (2015년 5월 24일)

Global 2015.05.22 11:04 조회 수 : 1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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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마음

나른한 오후 한국에서 통일선교아카데미 강의 차 오셨던 허문영 박사님과 함께 교회 근처의 산책로를 거닐었습니다.   그리 울창한 나무 숲 길은 아니지만 산새들이 제법 지저귀고 있었습니다.  조용히 길을 거니시던 허박사님께서 조용히 입을 여셨습니다.  목사님, 한국의 새소리와 미국의 새소리는 좀 다른 것 같아요. 미국 새소리는 한국의 새소리보다 훨씬 밝게 지저귀는 것 같아요.  참 듣기 좋네요.”  새소리가 다를 리 만무할 터인데 다르다니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런데 박사님은 한국에서 듣던 새소리와 미국에서 듣는 새소리가 분명 다르다고 말씀하십니다.  곰곰 생각해 보니 그것은 마음의 차이가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각종 업무와 연구로 마음이 분주할 때 들려오는 새소리는 귓가에 맴도는 소음 정도로 여겨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일상을 떠나 여유로운 마음으로 들었던 새소리는 분명 음미할수록 즐거움을 주는 힐링의 소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마음은 소리마저 다르게 듣도록 만듭니다.  마음이 울적한 사람은 새가 지저귈 때 새가 운다라고 표현합니다.  반면 마음이 즐거운 사람은 새가 노래한다라고 말합니다.  붉은 서쪽 하늘에 물든 황혼을 바라보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힘없이 저무는 인생 끝을 보는 듯 하다라고 한탄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은 찬란한 내일을 기약하며 태양이 휴식에 들어가노라며 시를 읖조립니다.  표현이 극과 극입니다.  차이는 마음일 것입니다.  한탄하는 사람은 분명 멍든 가슴의 소유자일 것이며, 싯귀를 떠올린 사람은 희망으로 가슴이 부푼 사람이 분명할 것입니다.


같은 말을 들어도 이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해와 오해의 차이는 결국 마음의 차이입니다. 같은 말을 들어도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좋게 받아들입니다.  반면 삐딱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삐딱하게 받아들입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는 속담이 있습니다.  불을 지피지도 않았는데 연기가 나겠는가?라는 말로 원인없는 결과 없다라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역설적으로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는 것 많이 보았다라고 말합니다.  원인도 근거도 없는 말들이 마치 사실인양 여겨지는 행태들이 너무도 많다라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표현하는 말입니다.


왜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수 있을까요?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아마도 보고, 듣는 사람이 오해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정한 것에 불편한 마음을 가진 사람일수록 오해할 가능성이 짙습니다.  그러나 오해하는 사람은 그것을 결코 오해라 여기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할 수 있는 한 오해를 유발시킬 수 있는 마음을 늘 살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떤 글에서 이해와 오해의 차이는 감정의 차이다라고 표현한 것을 보았습니다.  내가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으면 이해되는 것이 쉽고, 내가 불편한 감정을 가지면 오해하는 것이 쉽다라는 뜻일 겁니다.  이해란 가장 잘한 오해이고, 오해란 가장 적나라한 이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해는 덮어주고 품어주고자 하는 마음의 결과며, 오해는 불을 키고 결점을 찾아내고자 하는 마음의 결과라는 뜻일 것입니다. 


결국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이해하는 모습과 세상을 어지럽게 만드는 오해하는 모습은 오로지 마음 상태가 결정하는 것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닮아가길 그렇게 소망하는 예수님은 한번도 오해하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성경을 아무리 읽어보아도 단 한 건의 예수님의 오해조차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인간사 복잡한 것 예수님 시절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것 없는데 왜 예수님은 단 한번의 오해조차 허용하지 않으셨을까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항상 사랑의 마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과 관용이 예수님의 마음이었기에 예수님은 무엇을 보시건, 무엇을 들으시건 이해하는 자리에 설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랑의 마음.  그것이 해답입니다.



목회실에서 김지성 목사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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