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마음을 관리합시다”
어떤 마음이냐에 따라 같은 상황, 대상, 조건에 대한 해석이 확연히 달라집니다. 스티븐 코비라는 분이 쓴 책을 읽어보면서 어떤 마음을 품느냐에
따라 그 해석이 결정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뉴욕의 지하철에서 나이 어린 두 아이와
동행한 아버지가 있다. 그런데 이 두아이가 전철안에서 소리를 지르고 뛰면서 놀고
있다. 지하철 승객들이 불편해 한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철없이 지하철 객차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나무라지 않고 방관만 하고 있다. 참다
못한 승객 중 한사람이 노골적으로 불평하기 시작한다. “거 아이들 좀 조용히 시키세요!” 그 때 아버지가 깜짝 놀란 듯 미안해 하며 정중히 사과한다. “죄송합니다. 이이들에게 주의를 주겠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희가 아이들의 엄마 장례를 방금 치르고 돌아가는 길이라
제가 정신이 없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 말을 들은 승객들은 어느 누구도 더 이상 지하철 안에서
철없이 놀고 있던 이 사람의 아이들에 대해서 불평할 수 없었다. 』
같은 상황에 대한 해석이 달라집니다. 무엇이 그 해석을 달리했을까요? ‘긍휼의 마음’과 ‘짜증의 마음’이 그 해석을 갈랐던 것이입니다. 태도는 환경이나 조건의 결과물이 아닙니다. 그 태도를 결정짓는 것이 ‘해석’입니다. 그렇다면 그 해석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마음입니다. 어떤 마음이냐가 해석을 이미 결정짓는 것입니다.
탕자가 돌아옵니다. 그 탕자에 대해서
아버지와 형의 해석은 달랐습니다. 아버지는
‘죽었다가 살아온 아들’ 입니이다. 그러나 형의 해석은 ‘아버지의 재산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놈’ 입니다. 무슨 차이일까요? 마음의 차이였습니다. 아버지는 처음부터 ‘긍휼의 마음’, ‘사랑의
마음’으로 자신의 재산을 나눠 미리 둘째 아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나 형은 ‘시기의
마음’ 을 가졌을 뿐이었습니다.
어떤 마음을 품느냐에 따라 그 해석은 너무도 달라집니다.
어떤 마음을 품었느냐에 따라 방식 또한 달라집니다. 평화의 마음을 품었으면 ‘원자로’에서 ‘전기’가 생산 되도록 합니다. 그러나 파괴의 마음을 품었으면 ‘원자로’에서 ‘핵폭탄’이 생산 되도록 합니다. 날카로운 칼을 봅시다. 그 칼을 어떻게 쓸 것인가는 이미 그 마음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증오’를 품은 사람은
칼을 보면서 ‘증오심’을 불태웁니다. “이 칼로 복수하자!” 라는 의지를 세웁니다. 그러나 ‘화평’을 품은 사람은 그 칼을 보면서 “이 칼로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사람을 기쁘게 하자”라는 생각을 합니다. 내 손안에 있는 내용물 자체가 결과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그 내용물의 결과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어떤 마음이냐는 그래서 중요합니다.
지구가 생명체가 존재하는 별이 된 것은 바다 때문이라고 합니다. 바다가 썩은 물이 아닌 생명을 담은 물의 집합체이기에 바다를 통해서 비와 바람이 형성되고 그 결과 생명체들이 숨쉬며 존재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바다가 존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염분 때문이라고 합니다. 바다는 염도 3퍼센트를 포함합니다. 염도 3퍼센트의 바다가
지구를 살아있는 별로 만듭니다. 인생도
마찬가지 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이 인생을 결정짓습니다. 마음 관리에
조그만 신경써도 인생의 결과는 확연히 달라집니다.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마음이 인생을 결정짓는 키가 됩니다.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마음 속에 성령의 열매를 담을 수 있도록 합시다.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언 4:23)”
목회실에서 김지성 목사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