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05.png




차세대를 위한 멘토십


 인도의 지도자 간디는 국가적인 일뿐 아니라 개인적인 상담을 위해 찾아온 사람도 참 많았습니다. 하루는 한 중년여자가 뚱뚱한 아들을 데리고 와서는 체중조절과 치아보호를 위해 설탕을 먹지 말도록 충고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간디는 약간 망설이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죄송하지만 한달 뒤에 다시 오셨으면 합니다.” 여자는 너무나 예상 밖의 말을 들은 지라 굳은 표정으로 그냥 돌아서면서 서운한 생각을 했습니다. ‘위대한 지도자라기에 가정교육에도 도움을 줄 줄 알았는데내가 하찮은 사람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그 분이 너무 바쁘셔서 그런 걸까?’ 한달 뒤에 여자는 아들과 함께 다시 간디를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간디는 여자와 아이를 분명히 기억하는 듯 반갑게 맞아주더니 아이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아이 손을 잡고는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얘야, 설탕을 먹지 말거라. 그건 너에게 좋지 않단다.” 간디로부터 축복의 말까지 들은 아이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 본 아이의 어머니는 감사해 하면서도 당황하여 간디에게 질문했습니다. “ 왜 한달 전에는 그 말씀을 해주시지 않으셨나요?” 이에 간디는 부끄러운 듯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 때에는 저도 설탕을 먹고 있었답니다.” 간디는 한마디 간단하게 해줄 수 있는 말도 쉽게 말하지 않고 언행일치의 입장에서 처신했던 것입니다.


 간디의 일화는 장년세대가 차세대들을 향해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교훈이 됩니다. 자라나는 세대를 위해서 장년들이 해야 할 일은 좋은 본이 되는 것입니다. 장년들이 신앙의 좋은 본을 만들어 갈 때 차세대들은 그 신앙을 물려받고자 하는 감동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차세대들에게 장년세대는 멘토십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장년들은 차세대들에 대해서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와 더불어 영적인 전선을 형성시키는 신앙의 멘토로서 굳건하게 자리매김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좋은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 차세대들에게는 신앙생활에 대한 뜨거운 바람을 가지면서 정작 자신은 신앙생활에 대한 깊이 있는 헌신을 보이지 못하면 장년 세대의 기대는 무의미해집니다. 우리의 차세대들은 보기를 원합니다. 신앙의 좋은 모습을 장년세대들로부터 배우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감추어진 잠재능력이 있습니다. 애벌레는 우습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아름다운 나비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의 차세대들 안에도 놀라운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장년들은 차세대들의 가능성을 격려해주고, 잠재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합니다. 물리학적 법칙에 의하면 물은 위로 흐르지 못합니다. 동일한 개념의 영적 법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장년들이 그 차세대들을 낮게 평가하면 차세대들은 그 장년세대의 평가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장년들이 차세대들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격려해 주면 장년세대의 생각 이상으로 훌륭한 인물들로 자라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차세대를 위해서 격려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남아프리카 정글의 바벰바족은 가끔 누가 범죄하면 그를 마을 광장에 세우고, 모든 마을 사람들은 그 주위에 큰 원을 이루어 선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 사람씩 돌아가며 그 죄인의 장점이나 그가 과거에 했던 선행을 큰 소리로 외친다고 합니다. 그 때 과장이나 농담은 일체 금지되고 비난이나 욕이나 책망은 한마디도 해서는 안되며, 진지하게 칭찬만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칭찬이 바닥날 때까지 하다가 칭찬이 다 끝나면 그 때부터 그가 새사람이 되었다는 의미로 축제를 벌입니다. 그러면 정말 새사람이 된다고 합니다그래서 그 부족 사회에서는 범죄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진정한 변화와 발전은 비판과 지탄보다는 칭찬과 격려에서 더 많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차세대들을 힘써 격려하며 축복해 주어야 합니다. 미래의 소망인 우리의 차세대들을 위한 아름다운 사역을 펼치는 교회가 되길 간절한 마음으로 소망해 봅니다.


 목회실에서 김지성 목사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