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바른 해석, 바른 이해”

Global 2017.01.27 13:30 조회 수 : 1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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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해석, 바른 이해


2차 세계대전 말엽의 사건입니다.  1945 726 미국 대통령 트루먼, 영국 총리 처칠, 중화민국 주석 장제스 연합국 수뇌들은 포츠담선언을 통해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보냅니다.  연합국 측의 항복 요구가 언론에 대서특필 되면서 일본 여론은 들끓었습니다. 정부의 자세를 밝히라는 요구는 점차 거세 졌고,  결국 당시 스즈키 칸타로 총리는 728 오후 4 기자회견을 갖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말실수를 하고 맙니다.  "우리는 (포츠담선언) 대해 '모쿠사츠' 따름입니다"라면서 '모쿠사츠'라는 모호한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다. '모쿠사츠((もくさつ, mokusatsu)'라는 말은 영어나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서구 언어로 뜻을 표현할 있는 적당한 단어가 없습니다. 일본어 '모쿠사츠' '논평을 유보하다'에서부터 심지어 '거부하다'라는 의미까지 있습니다. 스즈키 총리는 '논평을 유보하다' 뜻으로 '모쿠사츠'라는 용어를 것이었지만, 일본의 대외 선전 매체의 역할을 하던 도메이 통신이 영문기사에서 '모쿠사츠' '무시하다 (ignore)’ 옮기고 만 것입니다.  도메이 통신의 '무시하다'라는 표현은 연쇄반응을 일으켜 서방 언론에 '거부하다'라는 의미로 그 뜻이 바뀌고 맙니다.  이에 격분한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사흘 뒤인 83 원자폭탄 투하를 지시하는 문서에 서명하게 됩니다. 오랫동안 연합통신에서 기자생활을 하신 서옥식님은 오역의 제국’이란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미국은 '무조건 항복' 요구를 거부한다는 답변에 경악했고 결국 86 히로시마에 이어 89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영어를 잘못 알아 듣는 바람에 총을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었습니다.  미국에 유학 중인 일본 학생이 늦잠을 자다가 학교에 지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워낙 급한 마음에 남의 집을 가로질러 학교를 가게 됩니다.  마침 이 지역을 순찰 중인 경관이 수상한 동양인의 행동을 보고 반복해서 경고했습니다. “Freeze!  Freeze! (정지!)”  하지만 마음이 급한 일본 학생은 이를 “Please”로 잘못 알아 들었습니다.  그리고 경찰을 한번 쳐다보고는 길을 재촉했습니다.  결국 경관은 이 학생을 향해 총을 발사하게 되고 일본인 유학생은 쓰러지게 되었습니다.  나중 법정에서 이 사건의 참고인으로 출석한 대부분의 일본 유학생들은  ‘Freeze’‘Please’의 발음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했으며, 영어의 ‘Freeze’ 정지라는 뜻이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인 것으로 드러납니다.


이처럼 잘못된 해석은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합니다.  때론 불행한 결과의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잘못 이해함으로 엉뚱한 결과가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따라서 바른 해석과 바른 이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그런 이유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표본인 성경에 대한 접근도 바른 해석바른 이해를 전제로 삼아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영적이라는 말입니다.  동시에 단어, 문장, 문법, 문맥(Context)으로 표현되는 언어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성경은 구조적, 논리적이기도 합니다.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석(주해)’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한 구절에 대해 어떤 해석을 내리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성경은 영적이기에 주석(성경 학자들의 연구에 의한 해설서)을 사용하는 것이 극히 인간적 방법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는 극히 무지하며 위험한 주장입니다.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배경과 단어의 원어적 의미, 문법적 의미 및 문맥을 살펴보는 것은 필수입니다.  성경이 영적이라 해서 신비로운 기운에 의지한 이해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성경의 저자는 성령님이시기에 성령의 깊은 통찰을 의지해야 함은 당연합니다.  그렇다고 성령의 통찰이 신비로운 감정만을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님은 지혜의 영이십니다.  동시에 진리의 영이십니다.  따라서 성령님께서 주시는 통찰은 감정을 뛰어넘고, 이성과 논리마저 조금도 어긋남이 없습니다.


혼돈의 시대가 되니 어지러운 성경해석이 난무합니다.  바른 성경해석도 잘못된 것처럼 조장시키는 가르침이 너무 많습니다. 신학과 교리를 지극히 인간적인 것으로 평가절하시키기도 합니다.  성경 해석의 방법을 잘 익힌 후 갖는 개인 경건의 시간에까지 도전을 합니다.  바르게 설명해도 집중하지 못함으로 성경의 뜻을 오해하는 일들이 다반사입니다.  이런 혼돈의 시대에 성경에 대한 바른 훈련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바르게 가르쳐야 합니다.  배우더라도 바르게 배워야 합니다.   그렇기에 이 시대는 신학적 균형을 갖춘 복음적 목회자로부터 성경을 제대로 배워야 합니다.  어설프게 배운 성경지식이 풍성한 신앙생활을 방해합니다.  동시에 성경을 접할 때 한눈 팔지 않고 성경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끈기도 필요합니다.  이 한해 성경에 대한 바른 해석, 바른 이해가 이루어지는 축복을 경험합시다.


목회실에서 김지성 목사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