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4차 산업혁명에서 배운다”

Global 2017.01.13 15:41 조회 수 :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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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에서 배운다


인류문명을 획기적으로 바꾼 전환점이 산업혁명이었습니다.  산업혁명은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기술혁신과 더불어 일어난 사회와 경제적 구조변화를 뜻합니다.  그간 인류사에는 세 번에 걸친 산업혁명이 있었습니다.  18세기 석탄을 연료로 사용하는 증기기관이 발명됩니다.  증기기관 이 전만해도 동력의 중심에는 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증기기관이 화석연료를 머금고 달궈지면서 수백, 수천 마리의 말보다 강한 힘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후세는 증기기관을 통한 기계적 혁명을 ‘1차 산업혁명이라 명명했습니다.  19세기는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저장하고 활용할 수 있는 수단으로 전기가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통해서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대량생산을 이뤄낸 산업은 점차 분업화되고 체계화됩니다.  이를 ‘2차 산업혁명이라 합니다.  20세기 후반에는 IT기술이 확산되고 이를 적용한 고도화된 자동화 단계로 접어들게 됩니다.  컴퓨터를 통한 자동화.   ‘3차 산업혁명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작년부터 ‘4차 산업혁명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독일 태생의 경제학자인 클라우스 슈밥’이 불을 지핀 화두입니다.  증기기관, 전기, 컴퓨터를 이을 산업혁명의 도구를 융합(Convergence)’이라 표현했습니다.  융합통합또는 연결됨을 뜻합니다.  과거에는 전화기는 통화를 위한 도구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전화기는 통화 뿐 아니라, 생활의 모든 영역을 묶는 통합기기가 되었습니다.  이른바 융합기기가 된 것입니다.  예전에는 영역의 구분이 분명했습니다.  공학, 의학, 건축학 등등  그러나 그 경계가 허물어져 가고 있습니다.  의학이 공학이 될 수도 있고, 공학이 건축학이 될 수도 있고, 건축학이 전산학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전기제품을 생산하는 회사가 소프트웨어를, 소프트웨어 전문회사가 자동차를, 생활용품을 생산하는 회사가 의약품을 생산하는 회사로 영역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산업구조의 혁명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클라우스 슈밥‘4차 산업혁명에 대해 언급한 이후 주요 경제대국들은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 독일, 일본, 중국은 산업구조를 융합기술로 전환시키는 정책을 작년부터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독자적인 산업은 존재할 수 없고, 모든 산업은 연결되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간 산업에 대해서도 원재료를 생산하는 1차 산업, 그것을 가공하는 2차 산업, 만들어진 제품을 판매하는 3차 산업으로 분류했지만, 이제 그 영역도 허물어져 가고 있습니다.  독자적인 산업 영역은 사라지고, 모든 산업의 영역은 빠른 속도로 통합되어 가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을 접하면서 홀로서기는 존재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음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위 말하는 독불장군은 발붙일 곳이 더 이상 없는 시대가 되었음이 분명함을 느낍니다.


성경은 함께 일함 (Working Together)’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대로 우리 몸에다 각각 다른 여러 지체를 두셨습니다.  전체가 하나의 지체로 되어 있다고 하면, 몸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데 실은 지체는 여럿이지만, 몸은 하나입니다 (고린도전서 12:18-20; 새번역)”.  성경은 은사를 설명하며 융합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융합의 특징은 연결 (Connecting)’입니다.  홀로 지체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융합에는 모든 산업이 핵심산업이라는 개념이 깔려 있습니다.  성경도 핵심 지체는 따로 없음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눈이 손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게 쓸 데가 없다라고 할 수가 없고, 머리가 발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게 쓸 데가 없다할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2:21; 새번역)”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되는 시대에는 내 비즈니스만이 최고라는 고집을 부린다면 망하는 기업이 됩니다.  반대로 변변치 못한 비즈니스라는 사고도 망하는 사업체를 만드는 지름길이 됩니다.  협력과 상생의 정신이 투철한 기업일수록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색깔이 강할수록 힘을 잃어버리는 교회생활이 됩니다.  역으로 누군가가 하겠지라는 수동적 사고도 설 자리를 잃어버리는 교회생활이 됩니다.  행복한 교회생활은 융합의 정신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함께 일함이 바로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융합의 정신이 아닐까요?



목회실에서 김지성 목사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