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버릴 것과 취할 것”

anonymous 2018.07.28 07:32 조회 수 : 39

05.png

 

 

 

버릴 것과 취할 것

 

‘라이언 일병 구하기(Saving the Private Ryan)’ 라는 영화를 보셨는지요?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부터 이 영화는 시작됩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이 영화를 극사실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진지를 목숨걸고 방어하는 독일군은 기관총과 대포를 소나기처럼 상륙하는 미군들을 향해 퍼붓습니다.  이 가공할 화력 앞에 미군들은 다리가 찢겨나가고, 팔이 짤려 나가며 여기 저기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갑니다.  그럼에도 미군들은 강력하게 저항하는 독일군 진지를 향해 일보 일보 전진해 갑니다.  조금만 한눈을 팔게 되면 그 순간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총알이나 대포알 세례를 받고 죽을 수 있습니다.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 속에서 전투는 진행됩니다.  그것이 싸움의 현장입니다.  죽느냐, 사느냐가 판가름 나는 현장.  그런 긴장감과 목숨건 전투적 상황과도 같은 것이 바로 신앙생활이라는 점을 시각화 시키기 위하여 성경은 <믿음의 선한 싸움>이라는 역설적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선한 싸움의 구체적 방법은 무엇일까요?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이여, 그대는 이 악한 것들을 피하십시오.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십시오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십시오. (디모데전서 6:11,12)”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피한다>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이것은 <버린다>라는 의미와 같습니다.  사실 버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익숙하기 때문에, 또는 집착하기 때문에, 또는 고정관념 때문에 정작 버려야 할 것을 붙들고 사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아시아와 유럽 두 대륙에 걸쳐 제국을 이루었던 몽골족은 사실 인구수에 있어서 그리 큰 종족이 아니었습니다.  징기스칸이 이끄는 몽골족은 소수민족, 그리고 약자에 불과했었습니다.  그러나 징기스칸의 몽골족은 거대한 중국대륙을 뛰어넘어, 이슬람권, 그리고 유럽까지 그 위세를 떨쳤습니다.  역사 이래 가장 광활한 영토를 가졌던 제국이 바로 징기스칸의 몽골제국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징기스칸의 몽골족은 소수이며, 약자로서 싸움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을까요?  징기스칸이 이끄는 몽골군은 버릴 것과 취하는 것에 달인들이었습니다.  당시 전투에 임하는 군인들은 두터운 갑옷, 긴창, , 화살등으로 중무장했었습니다.  그러나 몽골군은 전투에 나설 때  과감하게 버릴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몸을 가볍게 하는 복장, 활과 화살, 그리고 가벼운 칼로 무장했습니다.  언뜻 그런 가벼운 복장으로 어떻게 전투를 벌일 수 있었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그런 가벼운 복장이 기동력을 증가시켜 중무장한 적군들을 쉽게 격파하며 승승장구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모습은 마치 다윗이 골리앗과 맞서는 모습과 흡사합니다.  골리앗을 상대하겠노라고 자원한 다윗에게 사울왕은 자신의 갑옷, 투구, 그리고 무거운 칼을 다윗에게 입혔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과감히 그 갑옷, 투구, 무거운 칼을 내던졌습니다.  그리고 단단한 물맷돌 몇개를 취하며 중무장한 골리앗을 향하여 돌진하여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목숨이 걸린 치열한 싸움터에서 버릴 것과 취할 것을 잘 구분하는 군인은 승리의 개가를 올리는 법입니다.

 

신앙의 성장을 위해서도 버릴 것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생각, 판단, 검증되지 않은 방법, 욕심, 야망, 편안함에 대한 추구등을 말입니다.  버리는 것은 쉽지 않지만, 승리의 기쁨을 먼저 떠올린다면 과감히 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취해야 할 것을 성경을 통해 확인해야 합니다.  승리를 위한 싸움은 버릴 것과 취할 것을 구분짓는 것으로 결정됩니다.

 

목회실에서 김지성 목사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