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퇴근하는 길이었습니다. 갑자기 예전에 교회에서 섭섭하게 얘기하셨던 분들이 생각이 나며 제가 그 분들에 대해 그리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슴을 새삼 느겼습니다.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는 저 자신을 보며 몇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가지는 영적 권태기에 빠질때 나타나는 증상의 하나가 남을 정죄하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입니다. 정죄는 교만의 또 다른 형태입니다. 신앙의 연수가 늘어가며 말씀의 깊이가 더해 갈 수록 더 겸손해져야 하는데, 영적 권태기에 빠지면 내 안의 옛사람이 고개를 들며 교만을 말씀으로 무장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율법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며 예수님이 아니면 내 자신이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는 존재이기에 하나님께 더욱 감사해야 하는데, 그 율법을 나 자신 대신 타인을 향해 들이대는 날선 검이 됩니다. 나의 옛사람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내 안에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므로 그리스도가 인도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여전히 옛사람에게 지배받는 삶입니다.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몰라서 그랬지만 말씀의 교만으로 가득한 지금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 심각한 모습입니다.
수요일 QT(히 7:23~28)를 하며, 하나님께서는 대제사장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저의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까지 용서해 주셨슴을 다시 한번 새겼습니다. 제가 용서받은 죄를 생각하면, 저를 섭섭하게 한 말과 제 마음에 맞지 않는 일들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닙니다.
또 다른 한가지는 보이지 않는 사랑이 중요한데, 보여지는 사랑에만 신경쓰고 있구나 하는 생각입니다. 마태복음 22:37~40의 말씀을 보면 중요한 첫째 계명이 하나님 사랑이며, 둘째 계명이 이웃 사랑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첫째 계명인 하나님 사랑에 대해서는 마음에 거슬리는 것도 없고 어려움도 없을 것 같이 여겨집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연히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것 아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에 반해 둘째 계명인 이웃 사랑에 대해서는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마음에 거슬릴 때가 있습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이웃’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교회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입니다. 한몸인데,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지체’가 있는 것입니다. 오른손은 사랑하는데 왼손은 미워하거나, 가슴은 사랑하는데 다리는 미워하는 형국입니다.
첫째 계명인 하나님 사랑은 대개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나 제 안의 모습이나 별차이가 없지만 둘째 계명인 이웃 사랑은 표리부동(表裏不同)합니다. 겉으로는 사랑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미워하는 모습입니다. 아주 교묘한 죄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다시 한번 묵상해보면 ‘첫째 계명 하나님 사랑 다음이 둘째 계명 이웃 사랑’이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둘째는 그와 같으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사랑과 같은 계명이 이웃 사랑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웃을 사랑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제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마음에 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렇지 않다고 하였는데, 실상은 사람에게 보여지는 사랑에만 관심두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체를 정죄함을 통해 저의 교만을 깨닫습니다. 지체를 미워함을 통해 저의 외식(外飾)함을 깨닫습니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 깨닫는 것은 저의 이러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저를 용서하시고, 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사랑이 아니면 저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닙니다.